카톡으로 수익내는 파트너 3년 내 100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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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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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미국 출장길에 아이폰 7대를 사왔다. NHN을 나와 아이위랩(현 카카오)을 세운 지 3년. ‘무엇이든 사용자 10만 명짜리 서비스 하나만 만들자’고 달려들었지만 되는 게 없던 시기였다. 김 의장은 당시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 접자”고 직원들에게 최후통첩을 한 상태였다.

7명의 개발자는 아이폰 한 대씩 나눠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아이폰은 ‘담달폰’(다음 달에나 나올 폰)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 상륙 시기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김 의장은 “이게 곧 세상을 바꿀 물건”이라며 스마트폰용 앱 개발에 올인 했다. 그해 11월 국내에서도 아이폰 판매가 시작됐고, 보급 속도는 누구도 예상치 못할 만큼 빨랐다.

‘카카오톡’이 완성된 건 이듬해 3월 19일. 아이폰 앱스토어에 올라가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3년 이상 노력해도 불가능했던 10만 명 가입자가 단 이틀 만에 모였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 메신저’ 기능이 입소문을 타면서 앱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한 것이다. 카카오 신화의 서막이었다.

11월 19일 경기도 성남 판교 카카오 본사에서 만난 김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국내외에 10만개의 앱이 존재했다. 우리가 앱을 하나 더 만들면 10만+1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왜 만들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아무리 포장해도 스마트폰은 전화기다. 전화기 고유의 킬러 서비스는 역시 커뮤니케이션이고, 그 고유 속성에 주목했다. 카카오톡이라는 작은 서비스 하나로 시작했지만 단번에 사용자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갔다.”

현재 ‘카카오톡’ 가입자는 6600만 명. 하루 한 번 이상 메시지를 보내는 사용자가 2700만 명, 하루 최대 메시지 전송 수는 42억 건에 이른다. 웹과 모바일에서 하루 방문자 수 1500만 명인 네이버보다 사용성이 높다. 사진공유 서비스 ‘카카오스토리’, 모바일게임 플랫폼 ‘게임하기’ 등 카카오톡을 이용한 관련 서비스도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애니팡 대박, 3년 적자 단박에 만회

“최근 IT 시장의 큰 변화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에 대해 PC의 축소판이라고 하고, 전화기의 진화된 모습이라고도 하지만 이 조그만 기계가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지금까지 스마트폰 만큼 시간과 장소에 제약받지 않는 도구는 없었거든요. 저는 모바일 빅뱅이 시작됐다고 봅니다.”

김 의장은 올해의 경우 모바일 게임에서 빅뱅이 일어났다고 본다. IT업계에서 올해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애니팡’을 꼽을 정도다. 애니팡은 6600만 명의 카카오톡 가입자를 기반으로 단숨에 10대에서 40~50대까지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 게임’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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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팡 프로그램을 내려 받은 이용자 수는 2000만 명을 넘어섰고,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1000만 명에 달한다. 국민 5명 중 1명은 하루에 한 차례 이상 애니팡을 하는 셈이다. 지인들과 점수를 비교하는 등 경쟁을 유도한 것이 주효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인들이 애니팡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의장은 직원들에게 “모바일 세상은 애니팡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모바일 세상이라는 게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뜻이죠. 과거 툴에 비추어 예상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애니팡의 성공은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아이러브커피, 캔디팡, 드래곤플라이트 등 카카오톡의 ‘게임하기’에 입점한 게임들이 연속해서 히트를 쳤다. 특히 드래곤플라이트는 5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개발사에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매출 12억 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김 의장은 “대형 게임업체든 1인 개발자든 상관없이 순수하게 게임의 가능성만을 보고 카카오가 입점을 결정한다”며 “자본이 부족한 벤처나 1인 개발자들이 대형 업체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톡은 그동안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어 2009년 17억 원, 2010년 40억 원, 지난해 152억 원 등 적자 폭이 커졌다. 하지만 지난 9월 창사 5년 9개월 만에 첫 흑자를 내고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했다. 게임 매출의 20% 가량을 게임사로부터 받고, 지난해 도입한 기업광고 ‘플러스 친구’와 ‘이모티콘’ 판매가 상승세를 탄 결과다. 김 의장은 “10, 11월 실적은 수직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연말이면 그동안 적자를 모두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톡의 플랫폼에 들어오기 위해 게임업체들이 줄을 서고 있어 향후 수익구조가 안정적이라는 설명이다.

성공 비결은 타이밍과 속도

김 의장이 카카오톡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타이밍’과 ‘속도’다. 2009년 미국에서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고 모바일 메신저에 주목했고 그의 선택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시절부터 쌓아온 게임 산업에 대한 노하우도 큰 몫을 했다. “구글·페이스북 등 전 세계 IT기업들이 모바일 수익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탄탄한 수익 모델을 일궈낸 것이 성과”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김범수 의장은 ‘혁신 벤처가’로 유명하다. 삼성SDS에서 유니텔을 키워 한창 잘나갈 때 뛰쳐나와 한게임을 창업했고, 한게임과 네이버 합병회사인 NHN에서 대표를 하다 사표를 던지고 휴식 후 카카오톡을 만들었다.

“대학원 다닐 때 후배 자취방에서 PC통신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 같아요. 3개월 남짓 그 집에 얹혀 살았죠.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것들이 만들 새로운 세상이 보이더군요. 그 설렘으로 저는 남들보다 반걸음 정도 먼저 비즈니스를 시작했던 겁니다. 운도 상당히 따라주었고요.”

산업공학을 전공했던 그의 진로는 그 즈음 바뀌었다. PC통신을 주제로 대학원 졸업논문을 쓴 그는 ‘원 없이 컴퓨터를 만지고 싶어’ 삼성SDS에 입사해 PC통신 유니텔 개발팀에서 일했다.

당시 유니텔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는 1997년 ‘온라인에서 즐기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직장을 뛰쳐나왔다. 창업자금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마련한 500만원이 전부. 서울 교대역 인근 3평 오피스텔에서 인생을 걸고 국내 최초의 게임포털 한게임을 창업했다. 하지만 곧 외환위기가 터졌다. 직원 10명 중 9명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 운영이 어려워진 그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 게임을 개발해야 했다.

승부사 기질은 이 때 빛을 발했다. 그는 창업 초기 개발 자금도 부족한 상황에서 당시 1억2000만원의 빚을 내 한양대 앞에 국내 최대 규모의 PC방을 차렸다. 돈도 벌고 자신이 개발한 바둑, 포커 등의 게임을 직접 테스트해 보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PC방은 대성공을 거뒀다. 김 의장은 “이때 경험으로 게임 회사 경영뿐 아니라 최 일선의 PC방 영업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며 “‘최악의 리더는 결정하지 않는 리더’라는 점을 그 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PC방 한 켠에서 개발한 게임은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김 의장은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해 NHN 성공 스토리의 주역이 됐다. 게임과 검색 엔진의 결합으로 시장에 큰 파급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한게임 4주당 네이버 1주의 합병 비율이 불리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는 “합병의 시너지 효과만 생각했다”고 했다. NHN 시절에는 일본 진출을 주도해 한게임재팬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NHN 대표를 거쳐 NHN USA 대표로 있던 그는 2007년 갑자기 사표를 던졌다. 당시 이해진 NHN 의장과의 불화설 등 소문이 무성했지만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 성공한 NHN은 정박한 배여서 떠납니다.” 벤처인의 기질이 발동한 것이다. 성공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한게임과 NHN 시절엔 성공만을 보고 달렸습니다. 30대 후반에 인터넷 업계 정상에 올라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방황이 오더군요. 길을 잃은 느낌이랄까요. 평생 써도 남을 돈을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됐다,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고 느리게 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내가 걸어온 방향이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후 고1, 중3 자녀와 아내를 설득해 1년을 그저 놀기만 했다. “나도 재수했는데 1년 늦게 대학가면 어떠냐 싶었다”는 그는 가족과 여행도 가고 당구도 치고, PC방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잘할 수 있고 좋아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한 선배의 말을 되새기면서.

지금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콧수염도 이때 기르기 시작했다. “NHN을 나오면서 똑같은 삶이 아닌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콧수염은 나에겐 하나의 징표이자 출사표인 셈이죠. 인상이 밋밋했는데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젠 자리 잡았나 봅니다, 하하.”

이후 김 의장이 주력한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모바일 환경을 활용한 카카오톡이었다. 카카오의 수익 전략은 단순히 모바일 광고가 아닌 ‘유통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콘텐트를 담아내는 것이다.

“NHN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밖에 나와 보니 생태계가 다 죽어 있더군요. 과거 규모의 경제 아래서는 협력 업체가 돈을 벌면 납품단가를 낮추는 형식의 ‘갑을관계’가 강해 새로운 도전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생태계 경제는 협력기업 모두가 정해진 비중에 따른 수익분배로 상생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 역시 함께 하는 기업들과 동반 성장 할 수 있는 성공사례를 만들 계획입니다.”
상생하는 ‘생태계 경제’ 추구



이른바 ‘생태계 경제’ ‘상생(相生) 플랫폼’이다. 11월 20일 신규 플랫폼으로 선보인 ‘카카오페이지’ ‘스토리플러스’ ‘채팅플러스’도 같은 맥락이다. ‘카카오페이지’는 좋은 페이지만 있다면 누구나 페이지를 발행하고, 친구와 함께 나누는 콘텐트 플랫폼이다. ‘스토리플러스’는 새로운 고객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개인과 사업자들에게 마케팅 공간을 제공한다.

“한마디로 작가가 꿈인, 디자이너가 꿈인 젊은이들이 몇몇 성공한 사람들의 들러리가 되는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 중앙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 오디션 프로가 많지만 결국 방송은 무대에 오른 10명에게만 조명을 비추고 있잖아요. ‘100만분의 1’을 두고 기회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모바일에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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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3년 내 수익을 내는 100만 파트너를 만든다는 것이 김 의장의 목표다. 그는 “카카오 플랫폼의 핵심 요소는 거두절미하고 ‘파트너가 돈을 벌게 해주는 플랫폼’이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플랫폼도 많았고, 누구나 상생을 이야기했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페이스북 또한 플랫폼 전략으로 오픈을 강조했지만 이를 통해 돈을 번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플랫폼에 들어오는 파트너가 살 수 있어야 콘텐트도 좋아지고 사용자도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생깁니다. 또한 플랫폼은 공정한 룰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정한 룰을 통해 3년 내 100만 파트너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물론 수익을 내는 파트너입니다.”

올해 초 케이큐브벤처스라는 엔젤투자 전문회사를 설립해 국내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는 것도 같은 뜻에서다. 김 의장은 올해 115억 원의 펀드를 조성해 데이터분석기술, 커머스, 소셜, 게임 등 관련 초기기업 8개사에 투자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자선사업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봤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유니크한 사회활동은 엔젤투자라고 생각합니다. 한게임, 카카오처럼 조그마한 기업에서 큰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김 의장은 최근 개인 투자를 통해 상처치유를 목적으로한 사회적 기업도 출범시켰다. 국민 1000만 명에게 정신 건강을 회복시켜 주자는 ‘1000만 힐링 프로젝트’다. 구체적으로는 개개인의 정신 건강을 분석해 ‘내 마음 보고서’라는 책자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정혜신 정신과 의사가 운영하고 있는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의 지분 70.5%를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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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료와 출판비를 포함해 500만원을 내야 하는 고가의 프로그램을 대중화해 가격을 8만원으로 낮춰 누구든지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창업 초기의 불안감 등 트라우마가 존재합니다. 내 안의 해소되지 않은 욕구들도 강하고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평생을 살잖아요. 자신을 알게 되면 내가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객관적으로 알게 될 것으로 봅니다.”

카카오 본사 사무실은 자유분방한 분위기다. 벽이고 책상이고 온통 노란색 일색인 사무실 여기저기 직원들은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거나 음악을 듣고 있었다. 헤드폰을 쓴 직원은 스카이씽씽을 타고 복도 반대편 사무실로 재빨리 달려갔다. 호칭도 자유롭다. 영어호칭을 통해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김 의장은 Brian(브라이언), 이석우 대표는 vino(비노), 이제 범 대표는 JB(제이비)다.

김 의장은 카카오의 성공 배경을 “모든 것을 모든 직원에게 공개하는 기업문화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 직원들은 ‘카카오 아지트’라는 모임 앱을 통해 회의를 대신한다. 일반인도 내려 받아 쓸 수 있는 이 앱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 제안이나 팀 회의, 업무 보고 등 대부분의 일을 한다. 실제로 인터뷰가 있던 날, 기자의 지인은 카카오 아지트에서 이를 접하고 로비에 나와 기자를 기다리기도 했다.

“저는 직원들에게 카카오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만큼 사회적 책임 또한 따른다고 강조합니다.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모바일 세상에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수익을 내는 100만 파트너 목표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다 같이 만들면 다 같이 혜택을 보는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만만치 않다고 여겼는데 다행히 애니팡 같은 사례가 생기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생태계 경제’ ‘상생(相生) 플랫폼’을 통한 김범수 의장의 ‘카카오노믹스(Kakaonomic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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