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에는 피노키오가 있고, 내 젊은 시절에는 마이티가 있다

 

로봇명 마이티, 키 60cm, 체중 5.4kg, 25자유도로 엔터테인먼트 휴머노이드계의 최홍만이라고나 할까? 많이 부족하고 실패도 여러 번 겪은 이 녀석을 소개하려니 쑥스럽다. 하지만 내 젊은 시절의 소중한 결과물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에 그 탄생 스토리를 적는다.

 

 

드라마 속 축구 로봇에 매료되어

중학생일 무렵 인기 드라마 에 축구로봇이 소개되었다. 드라마에 등장한 축구로봇을 보고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무료하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던 내게 드라마 속 축구로봇은 새로운 꿈을 갖게 해주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도 전자기계과를 선택했고, 2002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매카트로닉스공학과에 입학하면서 로봇공학도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강의를 통해 이론을 익히고 로봇동아리 CIR에 가입해 선배들로부터 로봇 제작과 관련된 실제적 지식을 배워나갔다. 당시 동아리 선배가 제작하고 있던 2족보행 로봇(그 당시만 해도 휴머노이드라는 말보다는 2족보행 로봇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고 있었다.)을 보게 되었는데, 드라마 속에서 바퀴로 이동하는 로봇만 본 터라 두 발로 걷는 로봇을 만나니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선배의 로봇은 상체는 없고 하체만 있으며 보행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선배의 로봇보다 빠른 로봇을 내 손으로 제작하고 싶다.” 그러나 내 결심은 군 입대 때문에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얻은 소중한 경험

2006년 복학해서 보니 로봇 제작환경도 많이 변해 있었다. 로봇 전용 서보모터가 개발되고, 2족보행 로봇은 뛰어다닐 정도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아리방에서 못 보던 2족보행 로봇을 만났는데 동아리 선배가 졸업작품으로 제작하는 것이었다. 3년 전 보았던 로봇에 비해 상체와 머리, 팔이 있고, 심지어 손까지 동작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선배가 제작하는 것을 쭉 지켜보면서 내년에는 저보다 더 큰 로봇을 내가 제작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해 여름방학에 로보티즈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당시 로보티즈사는 60cm의 휴머노이드를 개발중이었는데 그 로봇을 분해 조립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네 차례에 걸쳐 수정된 하체 설계

 

 

구상과 설계를 시작하다

[2006년 11월] 졸업작품으로 휴머노이드를 제작하기로 하고 선배의 로봇을 바탕으로 구상에 들어갔다. 문제는 제작비용이었는데 어떤 행사 주관사로부터 제작비 지원 약속을 받았다.

[2006년 12월] 선배의 로봇보다 큰 녀석을 제작하기 위해 사양에 맞는 모터를 선정했다. 설계는 Solidworks라는 3D 툴로 하기로 정했는데, 툴에 익숙하지도 않고 머릿속에 떠오른 디자인을 3D 공간에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큰 작품을 처음부터 구상하고 설계하고 제작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순탄하지가 않았다.

[2007년 1월] Solidworks에 적응하고 독학으로 배운 판금설계에 따라 설계를 시작했다. 다른 로봇들을 벤치마킹하려고 그동안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설계를 진행했는데 생각대로 원하는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다. 열심히 공들여 설계했다가도 다시 보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런 시행착오는 하체 설계에만도 4번이나 거듭되었으며, 상체 설계도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역시 경험 부족이 문제였다.

[2007년 2월] 하체와 상체 설계를 마무리하고 팔 관절 설계를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조립도가 나왔다. 간섭탐지, 무게측정 및 검토를 하고 2D 작업에 들어갔다. 2D 작업을 마치고 제작을 해야 되는데 약속된 제작비 지원이 미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행사 자체가 취소되어 지원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난감한 상황에 작업은 중단되었다.

[2007년 3월] 파릇한 새싹이 돋고 캠퍼스에는 신입생들의 활기로 넘쳐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무거웠다. 나의 첫 번째 창조물이 그림만 그려진 채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유산된다는 위기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마음을 고쳐먹고 지도교수님을 찾아갔다. 상담 후 창의공학설계 경진대회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모터와 부속품 구매비용 정도의 제작비용이 지원되었다. 고가의 모터를 구입할 형편이 못돼 설계시 염두에 두었던 것 대신 저가의 모터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도면 수정작업도 뒤따랐다.

 

▲하체 홀가공 단면 및 조립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본격적인 제작에 몰두하다

[2007년 4월] 활기를 되찾아 프레임 절단과 절곡가공을 의뢰했다. 지원된 제작비는 주요 부품을 구입하는 데 한정되어 볼트와 기타 부속품 및 프레임 가공비는 졸업작품 팀원 4명이 사비로 분담해 떠맡았다. 2D 도면작업 후 레이저 가공업체에 넘겨 제작을 의뢰했는데 업체가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늦추곤 했다.

[2007년 5월] 우여곡절 끝에 프레임이 나와 학술제 개막일에 가조립을 했다. 가조립은 가공이 설계대로 나왔는지, 또 결함이 없는지 확인하는 차원이었는데 만족스러웠다. 가조립한 녀석을 학술제 둘째날부터 전시했는데, 맥주병과 담배를 들고 있는 불량스러운 콘셉트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렇게 학술제가 끝나고 녀석을 다시 분해하여 배선작업까지 끝마쳤다.

[2007년 6월]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었으며, 졸업작품 발표일은 월말로 정해졌다.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내내 녀석과 씨름하면서 모션을 짰다. 하지만 모션 제어도 순조롭지 않았다.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고 기본자세만 취할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앉았다 일어서기 모션을 짜는 도중 무릎 모터가 과열로 고장나버렸다. 그후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어 손상과 모터 과열 등이 10여 차례 계속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모터의 가감속 제어를 잘못한 탓이었다. 원인을 찾고 나서는 수월하게 진행되었지만 발표일에 맞춰 녀석을 탄생시키려면 밤낮 없이 모션 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사람도 무리하면 몸살을 앓고 알이 배기고 하듯이 녀석도 무리한 탓인지 하필이면 발표일을 하루 남겨 놓고 모터가 또 고장이 났다. 애타는 마음을 안은 채 모터업체로 달려가 수리를 받고서야 다음날 졸업작품 발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실패의 아픈 기억을 안고

[2007년 7월] 슈퍼로봇그랑프리 시즌2 대회가 30일에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휴머노이드 격투 종목과 퍼포먼스 종목을 포함한 규모가 큰 로봇행사라서 출전하기로 마음먹고 또 매일 밤을 새며 기본 모션과 격투 모션을 짰다. 그런데 처음부터 격투용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최대한 닮게 만든다는 콘셉트이다 보니 다른 로봇에 비해 동작도 둔하고 팔 길이도 짧았다. 덩치가 크다 보니 무겁고 둔한데 슈퍼그랑프리의 대회규정인 계체 통과가 가능한지 확인했다. 그리고 큰 덩치 탓에 누웠다가 일어서는 모션이 버거웠다. 겨우 문제점을 해결하고 예선에 참가했는데 첫 경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패인은 배터리 용량이었다. 자금이 부족해 동아리방에 굴러다니는 배터리를 사용했는데 몇 번 동작도 안하고 푹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배선작업

 

멀티엔지니어로서의 꿈을 향해

이렇듯 나의 첫 번째 창조물인 마이티는 실패의 아픈 기억을 안고 태어났다. 그러나 궂은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는 법, 그해 9월 코엑스에서 열린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 및 산업기술대전에서 휴머노이드 마이티를 전시하게 되었고, 10월에는 학교 축제와 졸업작품 전시회에도 참가했으며, 11월에는 창의공학설계 경진대회에 출품했다. 12월에는 EBS <로봇파워>와 로보원 대회에 출전했는데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공학도와 엔지니어들의 기술 관련 지식공유 카페인 매카피아(Http://cafe.naver.com/techmecha)에 작년부터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데, 메카피아닷컴에서 주관한 제3회 기술경진대회에 출품하게 되었다. 단지 내 휴머노이드를 소개하고자 출품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뜻밖에도 대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공학도로서의 길을 택한 데 대해 후회도 하고 전공을 바꿀 생각도 했는데 이 경진대회 결과 어느 정도 엔지니어로서 인정을 받은 듯해 자부심과 뿌듯함이 생겼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카페 회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주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 회원들로부터 제작의뢰도 자주 받는다. 그러나 학생 신분인 데다가 취업준비로 분주해 제작을 해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현재는 마이티 후속작으로 마이티블루라는 로봇을 구상하고 설계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로봇을 제작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1m 이상의 대형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로봇기술이 세계를 제패하는 그날까지 나는 멀티엔지니어로서의 꿈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마이티의 후속작인 마이티블루의 설계도면


http://www.robon.co.kr/board/index.html?id=edu05&no=1